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슨 웰스 (문단 편집) === 미완성 작품 === 미완성 작품이 아주 많다. 여러가지 사유로 중간에 엎어진 영화들로,[* 기본적으론 제작비 부족이 주된 이유며, 미완성으로 흘러가는 패턴은 대체로 다음과 같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야심차게 크랭크 인 했다가 부족한 예산으로 인해 제작이 늘어지게 되며 예산이 다 떨어지면 그대로 촬영이 중단되고 웰스가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부업 등을 하다가 제작에의 흥미를 상실하면서 결국 방치되는 식이다.] 상업영화, 다큐멘터리, 웰스 본인의 개인적인 영화 등 다양하다. 다만 하나같이 현재는 구해서 관람하기가 영 쉽지 않은 상황이다. * 모두가 진실이다(It's All True) - 1943년에 만들다가 엎어진 다큐멘터리로, 남아메리카를 취재하며 여러 풍경들을 담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제작사인 RKO에서 오슨 웰스가 만든 '위대한 앰버슨가'가 흥행에서 참패했고, 웰스에게 호의적이던 RKO 이사진이 사퇴했으며, 브라질 현지 당국도 웰스가 이 다큐에서 보여주려한 것들이 상영되는 걸 원치 않았던데다가, 결정적으로 영화 촬영 중 장면 연출을 위해 섭외된 현지인 어부들 4명이 배 전복 사고로 인해 떼죽음을 당하는 비극이 발생하자 RKO에서 아예 여기서 손을 떼버리면서 미완성으로 남게 됐다.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영화가 질산염 필름으로 촬영됐는데[* 질산염 필름은 잘 부식되는데다가 인화성도 높아서 보관 및 보존이 아주 어렵기로 악명이 높다.] 보관되오던 네가티브 필름 상당수가 심하게 훼손된 바람에 이미 1960년대에 많은 분량이 폐기됐다. * 생각 없는 바닷가재(The Unthinking Lobster) - 1950년에 만들던 영화로,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제작이 엎어진 뒤 남아있던 촬영분이 완전히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 [[보물섬#영화|보물섬]](Treasure Island) - 1964년에 시작했다가 1965년에 엎어진 프로젝트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원작을 영화화하려던 시도였으며 오슨 웰스는 감독 겸 [[롱 존 실버]] 역을 직접 맡았다. 하지만 '심야의 종소리' 제작과 이 영화 제작이 겹치면서, 안그래도 지독하게 빡빡한 재정 및 제작 여건인 상황에서 어쩔수 없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고 오슨 웰스는 '심야의 종소리' 제작을 택하고 이 영화 제작을 포기했다. 이후 1972년에 만들어진 영화 보물섬에 웰스는 [[롱 존 실버]] 역으로 다시 출연하게 됐다. * 히로인(The Heroine) - 1967년에 시작했다가 바로 엎어진 프로젝트로,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원작자로 유명한 [[카렌 블릭센]]의 단편을 영화화하려고 했다. 헝가리 정부의 지원을 받아 영화를 만드려고 했으나, 헝가리에서 촬영을 시작한 첫날(1967년 4월 14일) 헝가리 현지 영화팀의 형편없는 실력에 실망한데다 과다 청구된 인건비에 질려서 오슨 웰스는 도망가버렸다. 이 하루치 촬영분은 완전히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 - 1969년 [[CBS]]에서 동명의 소설을 모티브로 하여 TV 스페셜에 포함된 단편 영화의 제작 요청을 받아들여 작업을 진행했다. 웰스는 여기서 감독 겸 [[샤일록]] 역을 직접 맡았다. 제작이 거의 완료되던 와중에 웰스 본인의 세금 관련 문제로 인한 미 정부 당국과의 마찰을 이유로 CBS가 자금 지원을 철회하여 웰스는 어쩔수 없이 작품을 [[독립영화]]로 완성하게 된다. 이듬해 [[로마]]에서 본인의 지인에게 첫 시사회를 열어서 완성된 영화를 상영했으나[* 일설에 따르면 오자 코다르(Ojar Kodar)와 코다르의 어머니에게 보여줬다고 전한다.] 상영 이후 워크프린트 필름의 3분의 2가 로마에 있던 웰스의 사무실에서 불분명한 이유로 도난당하여 1970년대 초에 부득이하게 추가 분량을 촬영한 일이 있었다. 이후 웰스는 베니스의 상인에 대해 보유한 자신의 모든 자료를 파트너 오자 코다르에게 넘겨주었고, 오자는 이 자료들을 뮌헨 필름 아카이브에 기증하게 된다.[* 다만 웰스가 70년대 초에 촬영한 분량과 일부 촬영 분량은 시네마테크 프랑셰즈와 개인 수집가들이 소유하고 있다.] 2015년에 개최된 제72회 [[베니스 영화제]]의 개막식에서 관련된 자료를 복원한 영화가 웰스의 또다른 작품 오셀로와 함께 상영되었다. * [[돈 키호테]] - 1950년대 중반에 CBS의 [[TV 영화]] 작업을 바탕으로 제작을 시작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영화를 단일 영화로 변경하고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가 현대에서 활약하는 전개를 다룬 각본으로 촬영을 진행했으나 1969년에 돈 키호테 역할을 맡은 영화 배우가 제작 중에 앓던 지병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 주요 촬영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촬영 과정은 1972년에 종료했지만 웰스는 이 작품에 대한 추가 촬영 계획을 구상하면서 이를 위해 추가로 천 페이지가 넘는 대본을 제작하였는데, 프로젝트가 줄곧 지연되면서 영화 제작자가 웰스에게 언제 끝낼 것인지 난색을 표하며 질문한 일도 있었다. 이후로도 본인(웰스)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작품에 대한 작업들을 진행했었으며, 그의 사후 헤수스 프랑코가 감독을 맡아 웰스가 촬영한 작업 분량들을 편집하여 1992년에 개봉되었지만 작품(1992년 개봉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부정적이다. * 디프(The Deep) - 1966년에 시작해서 1969년에 중단된 프로젝트로, 찰스 윌리엄스(Charles Williams)의 'Dead Calm'을 원작으로 한다. 계속 개고생하면서 만들다가 결국 엎어져오던 개인적인 예술 영화는 집어치우고 오슨 웰스가 아예 작정하여 상업 영화로 의도해서 만들던 영화로, 자신의 흥행력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항상 그래왔듯이 빠듯한 제작비로 인해 영화 촬영은 지지부진 했고 어찌저찌 영화는 거의 완성됐으나 극후반부 촬영을 남겨 놓고 결국 제작비가 다 떨어지는 바람에 그대로 방치되었다. 웰스는 제작비를 마련하여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별 소득은 없었고 계속 제작중단 상태로 방치되다가, 영화의 주연으로 캐스팅 된 [[로렌스 하비]]가 1973년 위암으로 인해 45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는 바람에 완성할 기회는 영영 날아가버리고 끝내 완전히 엎어지고 말았다.[* 반면 넷플릭스에서 [[바람의 저편]]을 공개하면서 함께 공개한 제작 다큐멘터리 '오슨 웰스의 마지막 로즈버드'에서는 이와는 다르게 언급을 한다. 디프의 촬영에 참가한 한 제작진은 '여배우를 다시 부르면 완성이 됐을텐데, 오슨 웰스는 끝내 그녀를 부르질 않았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디프의 제작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이 영화를 높게 평가했는데, 역시 주연으로 캐스팅 됐던 [[잔느 모로]]는 디프의 촬영을 '환상적인 경험'이었다고 하면서 '이 영화의 유일한 단점은 미완성작이라는 것이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이 영화의 원작 'Dead Calm'은 이후 1989년에 필립 노이스 감독에 의해 다시 영화화됐다. 한국 출시제는 '죽음의 항해'이며, 이 영화는 [[니콜 키드먼]]의 출세작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 런던(London) - 1971년에 엎어진 코메디 영화로, 5가지의 짧은 코메디 스케치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제작이 엎어졌는데, 아마도 지독하게 재미가 없어서 웰스가 만들다가 집어치운게 아닐까 하는 추측도 있다. * 몽상가들(The Dreamers) - 1967년에 엎어졌던 '히로인'처럼 [[카렌 블릭센]]의 단편을 영화화하려고 했다. 1980년부터 1982년까지 제작하다가 엎어졌으며, 그의 완성작과 미완성작을 통틀어서 고려했을 때 웰스의 마지막 감독 연출 작품이다. 평생 웰스를 괴롭혀오던 제작비 부족으로 인해 일부분만 촬영하고 결국 중단되고 말았다. 남아 있는 필름에는 웰스와 그의 연인이던 오자 코다르의 출연 분량만 있다고 전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